하얀 리본 (Das weisse Band, Eine deutsche Kindergeschichte) - Michael Haneke

2010. 7. 13. 09:48Life/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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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리본은 좀 어려운 영화다. 기대하지 않았던 흑백 화면에 약간은 개연성 없어 보이는 도입부. 개인적으로 영화에 몰입하기 쉬워서 흑백 영화를 좋아한다.

 독일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 의사가 누군가가 쳐놓은 줄에 걸려 낙마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어린아이 장난이라고 웃어 넘기기엔 조금 심하고 악의적인 계획이라고 보기엔 조금 약한 사고. 마을 의사는 결국 부러진 팔 치료를 위해 입원하고 이내 사람들은 사건을 잊는다. 선생님의 나래이션과 함께 흘러가는 이야기는 왠지 사건의 배후를 밝혀나갈것 같은 분위기를 심어준다.

 이런 분위기의 영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추리하게 된다. 마치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처럼 이 사건이 누구의 소행일까? 어떤 방향으로 흘러서 해결될까? 마치 한 편의 스릴러물 같은 이 영화는 그러나 흔한 스릴러의 공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왜? 하얀 리본은 결과라기보다는 원인에 가까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후 소작농의 아내가 사고로 죽고 창고가 불에 타고 남작의 아들이 납치되어 매를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파의 아들이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불안과 광기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각각의 사고. 그러나 각 사고의 뒤엔 배후를 예감하게 하는 무리들이 있다. 항상 사고 주변을 배회하는 그들.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광기를 드러내기 시작한 주민들은 온갖 위선과 부도덕을 내보인다. 주민의 목숨을 좌우하는 남작이나 산파, 어린 딸에게까지 성욕을 드러내는 의사. 마지막으로 성직자이면서 구시대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종교적인 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마을 목사.

 '하얀 리본'은 상당히 재미있는 의미를 갖는다. 순결과 복종을 의미하는 하얀 리본으로 정신적인 억압을 가하는 구시대의 상징. 하얀 리본은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전쟁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던진다. 수많은 상징으로 뭉친 하얀 리본. 영화는 이 모든 우연과 광기의 역사가 결국은 그들 스스로가 자행한 일로부터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우연인듯 보이지만 우연이 아닌 사라예보의 총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