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죽음(Tiré à Part) - 장 자크 피슈테르(Jean-Jacques Fiechter)
2010. 8. 13. 22:17ㆍLife/Culture
<편집된 죽음>
편집된 죽음의 초반부는 상당히 식상하다. 프랑스 문학 특유의 갈고닦아 빛이 나는 문체도 아니며 그렇다고 굉장히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특징도 없다. 단지 자신의 여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친구에게 복수할 것이란 단편적인 정보만을 나타낸다. 묘사 역시 두드러진 부분이 없어 약간은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편집된 죽음의 진가는 책의 절반 정도를 읽었을 때부터 드러난다. 차근차근 치밀하게 다져놓은 기초 위에 순식간에 쌓아올리는 집처럼 정신없이 독자를 몰고 간다. 사실 이때도 흥미는 있지만, 약간은 가벼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며 서서히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에드워드의 치밀한 복수가 서서히 밝혀지며 사건은 끝을 향해 치닫는다. 예상했던 대로의 결말로 이어진 이야기는 갑작스레 등장한 여인 헨리엇 맥퍼슨에 의해 주춤하지만,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끝을 맺는다.
편집된 죽음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전히 공개한다. 등장인물의 심리부터 그들 사이의 관계, 심지어 복수 과정에 있어서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약간 단순해 보이기도 하고 정직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만큼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고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의 한 단어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성격이지만, 나도 모르게 이야기의 흐름과 관계없는 진부한 묘사를 모두 뛰어넘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빠져들었고 또 답답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전 접했던 그 대단한 찬사의 이유는 찾지 못했다. 내 문학적 소양과 감성이 부족한 것일까? 소위 대작이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와 같은 지독한 여운은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재미있게 읽을만한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행하지 않은 살인, 아슬아슬하게 피한 살육,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파괴적 증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사람들이 꾹꾹 눌러 참는 그런 파괴적 증오심이 모두 행위를 통해 표출된다면, 남편을 죽인 양순한 아내, 주인의 목을 잘라버린 충성스러운 늙은 하인의 이야기는 너무나 진부하게 들리고 우리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않을 것이다.》
《장의사같은 복장을 한 그들을 보면서 나는 내 음모가 탄로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공모자로서의 연대감이 뒤섞인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마치 엑스레이 사진의 분석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가 된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 제 종양이 악성인가요?'》
《나 자신에 대한 가시를 게을리 하면 안되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폭로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안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말장난이나 중의적 표현 등 다소 미묘한 암시를 던지며 그 같은 긴장감을 스스로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권총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 나는 혼자였고 죽은 자들 중에서도 죽은 자였다. 자살할 용기도 없었다. 이제는 이 고뇌의 짐을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혼자 짊어지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