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3. 00:47ㆍLife/Appetite
처음 벽제라는 이름을 접한건 2004년 초였다. 당시 신촌 벽제 갈비의 5만원짜리 등심은 대학생인 나에겐 너무나 못된 가격이었다. 거기다 된장찌게를 따로 주문해야 하는 센스까지 갖춘 벽제 갈비. 당시 5만원이면 산지에서 진공 포장으로 배송해주는 1등급 한우 암소 안심을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을 가격이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잇몸과 이가 약한 나는 쫄깃한 고기 부위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다. 소고기는 안심, 돼지는 앞다리나 갈매기, 항정, 닭은 가슴이나 안심 등등. 뭐 어쨌든 그런 가격에도 후회하지 않을만한 맛이었다.
주말에 오랜만에 서울로 놀러갔다.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혜진이가 추천한 '벽제 구이로'에서 고기를 먹기로 했다. 2만원짜리 돼지갈비가 판다는 벽제 구이로. 벽제라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가격이 못된 벽제갈비와 형제 회사이다. 형제인 만큼 가격이 못됐다.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출출해서 고기를 먹기로 했다. 일단 오랜만에 항정살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15천원짜리 항정살. 냉면과 손만두도 시키고 2만원짜리 돼.갈.은 마지막에 추가로 먹었다.
일단 숯에 놀랐다.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숯이랄까. 직접 보면 안다. 네이년만 검색해도 무지 많이 나오는 벽제 구이로의 숯 사진. 그 숯에 굽는 항정살은 보기에도 좋지만 맛도 꽤 괜찮았다. 솔직히 가격 계급장 떼고 비교해도 반 값밖에 안하는 장군의 항정살과 맛의 차이가 있진 않았지만, 어쨌든 둘 다 맛있으니 됐다.
그 다음 나온 냉면. 전통 평양 냉면이란다. 허허. 담백하고 깔끔한게 매력인데 이거 내가 먹기엔 너무 담백하고 너무 깔끔하다. 솔직히 내 입맛엔 별로. 혜진이는 맛있다며 몇 번 먹으면 그 맛에 빠진다는데 난 첨이라 별로였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만두. 만두는 이건 뭐, 니맛 내맛, 무슨 맛이니? 만두를 워낙 좋아해서 웬만한 만두는 다 먹어봤지만, 이런 맛은 첨이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맛.
마지막에 추가 주문한 돼.갈.은 먹을만은 했는데 좀 짰다. 다른 사람들이 최고의 돼.갈.이라고 극찬을 해서 한껏 기대를 품고 갔지만 뭐. 내 입맛이 63빌딩 옥상만큼 높은 것도 아닌걸로 봐서 사람에 따라 조금 실망하는 분들도 있을 듯. 결국 돈 값 못한 점심.
마지막으로 점원 분들이 말투로 봐서는 연변이나 연길 분들이 아닐까 할 정도로 북쪽 억양이 강한 분들이었는데 서비스 0점! 메뉴가 주문이 되는지 않되는지도 제대로 모르시고. 음식을 좀 먹다보니 치우기 바쁘시고. 뭐 전반적으로 실망스럽다.
혜진이는 본점에서 먹었을 땐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데 아쉽다. 진짜 마지막으로, 낡은 상가 건물 2층인데 계단으로 가야 해서 좀 불편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본점에서 다시 먹어보고 싶다. 대치점 실망이야!
역시 벽제는 소고기를 먹어야 하나 ㅠ.ㅠ
참, 그날 점심 손님 90%가 주문한 설렁탕은 못먹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설렁탕은 한 번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