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 톰 롭 스미스
2010. 9. 7. 20:34ㆍLife/Culture
**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차일드 44는 차가운 눈 위에 누워 있다. 입속엔 흙으로 보이는 물질이 가득 차 있고 두 발은 묶여 있다. 이렇게 사건은 시작된다.
레오는 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을 쫓던 중 상부의 명령으로 부하 아들의 죽음을 조사한다. 그는 의례 있는 열차 사고로 치부하고 그의 가족에게 사고임을 인정할 것을 강요한다. 그에게 부하 아들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며 단지 중요한 스파이를 쫓을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귀찮은 일일 뿐이다.
귀찮은 일에 시간을 빼앗긴 사이 도망한 스파이를 잡느라 그는 진이 다 빠졌다. 그의 옆엔 그의 실패만을 기다리며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바실리가 있다. 바실리는 왜 그러게 그가 미울까? 왜 그를 망가뜨리고 싶어 할까? 책을 덮을 때까지 그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작가는 그 이유를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싶었던 건지 특별히 내세울 만한 이유가 없었던 건지 단순히 밝히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도 아니면 바실리란 인물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던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착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노래에 감동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수년을 갇혀서 중국 음식만 먹게 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 아닌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레오처럼 높은 직책에 있는 자조차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목숨이 오가는 세상이다. 국민 모두는 공포라고 부르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갖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이웃이라는 이름의 간수에게 감시당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결과다.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선 어떤 범죄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원하고 항상 그렇게 된다. 그 과정이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요소다. 그들에겐 손에 쥔 자백서, 진술서만이 진실 그 자체이고 그것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당의 기본 원칙, 내가 속한 세상을 파괴하는 행위와도 같다.
어느 날 레오의 충성심이 시험대에 오른다. 아마도 스파이의 자백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정답을 알지만, 사랑하는 부인을 버릴 순 없다. 아니, 있지도 않은 아이를 배신할 순 없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아내에게 듣게 된 충격적인 고백. 그의 아내는 죽음이 두려웠다. 그와 그녀의 결혼 생활을 지탱해준 것은 다름 아닌 공포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을 잃고 아내의 마음마저 잃은 레오는 변방으로 쫓겨가게 되고 어느 날 우연히 한 소녀의 사건에 주목한다. 몰래 그 소녀의 죽음을 조사하게 되고 입을 가득 채운 흙으로 보이는 물질과 발을 묶은 끈, 처참하게 난자당한 그녀의 몸에서 의문점을 발견하게 된다. 남몰래 사건을 조사하던 그의 주변엔 잃었던 아내와 변방 마을의 대장(?)이 함께하게 된다. 그는 그들의 목숨, 진실, 뿌리부터 잘못된 현 사회 체제 전반을 상대로 사건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차일드 44의 정체. 희대의 연쇄 살인마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그와 그의 패거리는 소련 전역으로 수사 범위를 넓히고 결국 살인마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을 찾아낸다. 그 사이 도망자가 된 그들은 권력의 공포에 당당히 맞서는 많은 국민의 도움으로 목적지에 이른다. 거기서 맞닥드린 살인마의 정체는 그 옛날 살아남기 위해 함께 고양이를 사냥하던 바로 그 안드레이였다. 어수룩하고 눈이 어둡던 안드레이. 그가 형을 찾을 방법은 바로 그 고양이 사냥뿐이었다.
차일드 44는 한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이며 눈앞에서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한 동생의 이야기다. 또 과거를 버린 한 사내와 진짜 세상과의 만남이며 모든 것을 잃은 권력자가 권력 이면의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너무나 진부한 표현이지만, 1장부터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며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는 소설이다. 왜 고양이 잡이가 나올까? 왜 갑자기 20년이 흘렀지?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가 흘러가지? 그 접점을 찾을 때까지, 접점으로부터 끝으로 이르는 과정. 어느 것도 왜? 라는 물음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없다.
차일드 44는 차가운 눈 위에 누워 있다. 입속엔 흙으로 보이는 물질이 가득 차 있고 두 발은 묶여 있다. 이렇게 사건은 시작된다.
레오는 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을 쫓던 중 상부의 명령으로 부하 아들의 죽음을 조사한다. 그는 의례 있는 열차 사고로 치부하고 그의 가족에게 사고임을 인정할 것을 강요한다. 그에게 부하 아들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며 단지 중요한 스파이를 쫓을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귀찮은 일일 뿐이다.
귀찮은 일에 시간을 빼앗긴 사이 도망한 스파이를 잡느라 그는 진이 다 빠졌다. 그의 옆엔 그의 실패만을 기다리며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바실리가 있다. 바실리는 왜 그러게 그가 미울까? 왜 그를 망가뜨리고 싶어 할까? 책을 덮을 때까지 그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작가는 그 이유를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싶었던 건지 특별히 내세울 만한 이유가 없었던 건지 단순히 밝히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도 아니면 바실리란 인물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던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착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노래에 감동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수년을 갇혀서 중국 음식만 먹게 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 아닌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레오처럼 높은 직책에 있는 자조차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목숨이 오가는 세상이다. 국민 모두는 공포라고 부르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갖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이웃이라는 이름의 간수에게 감시당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결과다.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선 어떤 범죄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원하고 항상 그렇게 된다. 그 과정이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요소다. 그들에겐 손에 쥔 자백서, 진술서만이 진실 그 자체이고 그것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당의 기본 원칙, 내가 속한 세상을 파괴하는 행위와도 같다.
어느 날 레오의 충성심이 시험대에 오른다. 아마도 스파이의 자백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정답을 알지만, 사랑하는 부인을 버릴 순 없다. 아니, 있지도 않은 아이를 배신할 순 없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아내에게 듣게 된 충격적인 고백. 그의 아내는 죽음이 두려웠다. 그와 그녀의 결혼 생활을 지탱해준 것은 다름 아닌 공포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을 잃고 아내의 마음마저 잃은 레오는 변방으로 쫓겨가게 되고 어느 날 우연히 한 소녀의 사건에 주목한다. 몰래 그 소녀의 죽음을 조사하게 되고 입을 가득 채운 흙으로 보이는 물질과 발을 묶은 끈, 처참하게 난자당한 그녀의 몸에서 의문점을 발견하게 된다. 남몰래 사건을 조사하던 그의 주변엔 잃었던 아내와 변방 마을의 대장(?)이 함께하게 된다. 그는 그들의 목숨, 진실, 뿌리부터 잘못된 현 사회 체제 전반을 상대로 사건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차일드 44의 정체. 희대의 연쇄 살인마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그와 그의 패거리는 소련 전역으로 수사 범위를 넓히고 결국 살인마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을 찾아낸다. 그 사이 도망자가 된 그들은 권력의 공포에 당당히 맞서는 많은 국민의 도움으로 목적지에 이른다. 거기서 맞닥드린 살인마의 정체는 그 옛날 살아남기 위해 함께 고양이를 사냥하던 바로 그 안드레이였다. 어수룩하고 눈이 어둡던 안드레이. 그가 형을 찾을 방법은 바로 그 고양이 사냥뿐이었다.
차일드 44는 한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이며 눈앞에서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한 동생의 이야기다. 또 과거를 버린 한 사내와 진짜 세상과의 만남이며 모든 것을 잃은 권력자가 권력 이면의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너무나 진부한 표현이지만, 1장부터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며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는 소설이다. 왜 고양이 잡이가 나올까? 왜 갑자기 20년이 흘렀지?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가 흘러가지? 그 접점을 찾을 때까지, 접점으로부터 끝으로 이르는 과정. 어느 것도 왜? 라는 물음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