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

2010. 5. 28. 20:31Life/Chat

 난 씻는 걸 좋아한다. 씻는 거라고 표현하면 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느긋하게 샤워나 목욕, 반신욕, 거품 목욕, 찜질, 머리 감기, 세수, 손 씻기, 발 씻기, 면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영어로 하면 bathing & grooming이랄까. 우리집 귀염둥이들이 하는 몸 단장도 그루밍이라고 하더라. 단 하나 싫어하는 것은 양치. 그래도 억지로 하루에 세 번은 한다. 치아는 정말 튼튼하게 생겼는데 사실 가족 모두가 이가 좋지 않아서 나도 역시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끝이다. 매일 세 번 닦아도 지금 어금니 중에 충치 치료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금 투성이, 돈 덩어리. 사실 입원 전엔 너무 귀찮아서 2번, 저녁때 술 많이 마신 날은 한 번 닦는 날도 있었다. 으,,드러워. 과음하면 양치를 하는 게 너무 싫고 귀찮아서. 입원하고부터 3번씩 양치한다. 그런데 양치하고 나서 음식 먹는 것을 싫어해서 양치만 자주 해도 자동으로 다이어트가 된다. 양치한 다음 상쾌한 기분을 오래 유지하고 싶어서 군것질을 안 하게 되거든. 하루에 세 번 양치하면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식사 외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물만 빼고.

 어쨌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면도다. 요즘이야 젊은 여성분들 대다수가 면도를 하지만, 얼굴 면도를 하는 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예전에 라디오 '여성시대'의 사연에서 별 생각 없이 한 번 콧수염을 면도했다가 수염이 진하게 나서 계속 면도하게 된 여성분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대다수 남자는 면도를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면도해도 깨끗한 얼굴이 유지되는 축복받은 이도 있을 것이고 아침에 면도를 해도 오후가 되면 "넌 면도 좀 하고 다녀라. 얼굴이 그게 뭐냐?"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난 매일 아침에 면도를 하면 다음날 아침까지 딱 유지되는 '1일 1면도형'이다. 수염이 많지 않은데 기는 속도가 제각각 이라 면도를 하지 않으면 지저분하다. 차라리 균일하게 자라면 연애인 님들처럼 콧수염 기른다는 핑계라도 댈 텐데.

 그런데 매일 아침 면도를 하려면 상당히 귀찮다. 그냥 쓱쓱 깍는 게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면도는 4단계다.

  1. 따듯한 물로 얼굴을 씻어서 수분을 공급하고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모공을 연다. 혹자는 뜨거운 김을 쐰 상태에서 면도하면 피부가 늘어난 상태에서 베이거나 피부 조직이 많이 상할 수 있다고 하는 데 이건 너무 오래 물에 불렸을 상황에 해당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따듯한 물로 얼굴을 씻은 다음에 면도를 하는 게 가장 깔끔하고 상처가 없는 것 같다. 단, 샤워를 한 후에 한다든지 너무 오래 불리면 피부가 쭈글해져서 면도가 힘드니 조심한다.

  2. 윤활을 위한 거품이나 젤을 바르고 마사지한다.
    Muhle

    럭셔리한 분들은 전용 젤로 수염을 세운 다음 쉐이빙 브러쉬로 거품을 바르더라. 고급 면도 세트엔 어린 시절 이발소에서 사용하던 쉐이빙 브러쉬가 들어 있던데 써보지 못했지만, 얼굴에 닿는 느낌은 정말 좋을 듯. 난 그냥 아쉬운 대로 All-in-One 알로에 베라 성분이 포함된 면도 젤로 수염을 세우면서 거품도 바른다. 뭐 수염이 진짜 서지는 않는 듯하다.

  3. 면도를 한다. 면도에 중요한 요소는 면도기와 면도 방법. 면도기는 종류가 아주 많은데 최근 많이 사용하는 모델은 질레트 마하 3/ M3 파워 시리즈, 퓨전 시리즈, 쉬크 쿼드로 시리즈, 도루코 PACE 6이다.

     질레트의 스테디셀러인 마하 3. 내 짐작이지만 단일 모델로 가장 많이 판매한 제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하 3을 사용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3중 날의 선두주자로 턱선에 완전히 밀착되는 느낌이 아주 좋다. 밀착감 만큼이나 깨끗하게 면도 된다. 수염이 면도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질레트 퓨전은 쉬크의 쿼드로 시리즈에 대항해서 나온 5중 날이다. 실제 사용해보진 못했지만, 마하 3의 밀착감에 5중 날이라면 그 성능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전지로 미세 진동을 일으켜서 사용하는 모델도 있다. 그러나 미세 진동 모델은 사용자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오픈 카트리지 형태라서 세척이 용이하다.

     쉬크 쿼드로는 4중 날 면도기다. 쉬크 역시 질레트만큼이나 밀착감이 좋은데 질레트와는 그 각도가 다르다. 피부에 감기듯이 잘리는 느낌은 거의 같지만, 최적의 각도가 달라서 한 가지 브랜드에 익숙한 사용자가 다른 브랜드로 바꾸면 처음엔 좀 어색하다. 나도 오랫동안 질레트를 사용하다가 처음 쉬크를 사용했을 때 좀 어색했다. 티타늄 날의 내구성은 정말 최고다. 면도날을 언제 갈았는지를 잊어버릴 정도로 사용해도 절삭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면도날을 감싸는 세로 와이어는 상처 없는 면도를 돕는다. 그러나 쿼드로의 최대 단점이라면 오픈 카트리지 형태가 아니라는 것. 세척이 쉽지 않다. 샤워기로 물을 강하게 해서 씻으면 잘 씻기는 듯.

     그 외에 도루코에는 PACE 6이라는 6중 날 면도기가 있다. 예전에 도루코의 XPEC3 시리즈를 사용해봤는데 밀착감이 너무 떨어지고 면도날 내구성이 떨어졌었다. 6중 날이라면 면도 자체는 아주 잘 될거 같지만, 아무래도 밀착감이 떨어진다는 점이 좀 걸린다. 사용 평을 보면 6중 날의 면도 성능엔 만족하지만 밀착감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PACE 6의 장점은 면도날이 국산이라는 것과 질레트 퓨전과 같은 오픈 카트리지 방식으로 세척이 쉽다는 것.

     대표 모델의 장점이라면 질레트 퓨전은 밀착력, 쉬크 쿼드로는 내구성과 절삭력, 도루코 페이스 6은 6중 날.

    Renaissance

    일반적인 면도날 교환형 면도기 외에 일자 칼 면도기도 있다. 스위니 토드에서 목을 따던 그 면도기. One of 남자의 로망.

    면도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학파가 있다. 수염 방향 학파와 수염 역방향 학파.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수염 방향은 피부에 자극이 거의 없다. 그러나 정성 들여 수염을 세우지 않으면 대부분의 일반인은 '뭐야 이거. 수염이 깨끗하게 안 잘리잖아'라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수염 역방향은 짧은 시간에 깔끔하게 자를 수 있다. 단점은 피부에 자극이 크고 실수하면 살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것. 예전엔 잘려 봤자 살이 두세 동강 났지만, 요즘은 6등분 될 수도 있다. 아마 제대로 비면 한 달은 갈지도 모른다.

  4. 마지막 단계는 마무리다. 찬물로 가볍게 피부를 세척하면서 진정시킨다. 여기서 끝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다음에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피부가 푸석해지거나 각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알콜 성분이 없는 애프터 쉐이브나 스킨, 모이스처라이저 등으로 피부를 정리한다. 간혹 고가의 애프터 쉐이브 중엔 수염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면도를 쉽게 돕는 기능성 제품도 있던데 직접 사용해보지 않아서 성능은 모르겠다. 평소에 큰 트러블이 없어서 그냥 스킨, 로션을 사용한다. 귀찮더라도 빠뜨리지 말이야 할 단계!!

 간혹 매일 아침에 하는 면도는 하루를 보내기 전에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면도가 깔끔하게 잘 되면 하루가 잘 풀리고 상처가 나거나 깨끗하게 면도가 되지 않으면 뭔가 찜찜한 기분이랄까. 잠깐 전기면도기도 사용해봤지만, 손끝에서 '사각' 하면서 수염이 잘려나가는 그 느낌이 없어서 오래 정을 붙이지 못했다. 지인 중엔 너무 수염이 많아서 레이저 제모를 시도했다가 통증 때문에 포기한 이도 있다. 어쨌든, 면도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