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

2010. 8. 27. 01:58Life

문득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프단 사실을 깨달았다. 난 이런 상태를 저혈당 상태라고 부른다. 진짜 저혈당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잠도 안 오고 손이 부르르 떨린다. 가끔, 아주 가끔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다. 배고픔.

어떻게 하지? 벌써 10시가 넘었는데.

옆자리 친구도 자고 있었다.

뭘 시켜먹을까? 에이, 혼자 어떻게 다 먹어? 게다가 돈도 얼마 없잖아...

때마침 사다 둔 먹을거리도 다 떨어지고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집에 가서 먹을 거나 달라고 해야지.

집은 병원에서 4~5분 거리다. 요즘엔 상태가 좀 나아져서 나도 10분 정도면 집에 도착한다. 땀은 좀 나지만.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화들짝 놀라며 반기셨다. 짧게 이어진 대화. 부모님께서 경상도 분이셔서 그런지 말수가 적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그냥, 너무 배고픈데 마땅히 먹을 것도 없고 해서 뭐 사 먹으려다가 그냥 왔어요.

그래? 뭐 먹을래?

고기? 아님 라면이나 하나 먹을까?

훈제 오리 먹을래?

네. 좋아요.

어머니가 음식 장만하시는 동안 옆을 보니 빵이 있었다. 매형 - 매형이 제빵사다. - 이 가져오셨나 보네. 일단 빵으로 굶주린 배를 채운다. 커피 빵이란다. 꽤 큰 크기였는데 몇 입 먹으니 없다.

잠시 후 살짝 구운 훈제 오리를 상추, 마늘, 고추 등 각종 야채와 함께 한 상 차려오셨다. 아버지는 그 김에 소주 한잔하셨다. 허겁지겁 상추 쌈에 고추 마늘을 곁들여 오리를 먹는다. 아직도 손이 떨린다. 저혈당.

혀끝을 톡 쏘는 청량 고추의 매운맛은 언제 먹어도 일품이다. 언제부턴가 매운 고추 신봉자가 되어버린 나. 정신없이 먹다 보니 훈제 오리 반 마리를 다 먹었다.

아, 이제 손 떨림이 멎었다. 그때 갑자기 어머니께서 내게 묻는다.

국수나 한 그릇 먹을래? 낮에 먹은 국수랑 국물 남았는데.

네, 그럼 조금만 주세요!

조금 기다리자 설렁탕 뚝배기에 가득 국수를 담아 오셨다. 우리 집 특제 비법 간장 양념을 듬뿍 넣고 고명으로 계란지단과 파란 나물 추가. 우리 집 특제 비법 간장 양념은 정말 일품이다. 우리 집 식구뿐 아니라 주변에 그 양념을 먹어본 사람은 입을 모아 맛있다고 칭찬하는 그 양념!!

이제 반도 안 남았네. 배는 조금 부르지만, 다 먹자!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지. 결국, 그 많은 국수까지 다 먹었다. 아, 배불러.

TV에서 '제빵왕 김탁구'가 끝나고 '해피투게더'가 시작한다.

에이, 그래 배 꺼뜨리면서 이거 보고 들어가지 뭐.

결국, 해피투게더를 다 보고 후식으로 아포가토(?)란 아이스크림을 먹고 12시 30분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에 땀도 씻어내고. 아, 개운하다. 이제 좀 살 것 같아. 역시 사람은 잘 먹어야 산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잖아. 억만금이 있어서 음식이 없으면 못산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