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보관소에 쌓인 미완성 글.

2011. 4. 5. 04:03Life

 오랜만에 블로그 스킨을 바꾸고 정리하던 중 임시 보관소에 쌓아놓고 완성하지 않은 글이 60개가 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난 글을 빨리 못 쓴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야기할 때도 곱씹어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해야 하는데 항상 그럴 순 없으니 말문이 막힌다.

 컴퓨터나 문화생활 분류에 글 하나를 쓰려면 아주 짧게는 4-5시간, 길게는 몇 달이 걸릴 때도 있다. 평균을 내어봐도 8시간 이상 걸린다. 쓰다만 글이 64개면 내가 2시간씩만 썼다고 해도 128시간이다. 5일이 넘는 시간이다.

 완성하지 못한 글은 대부분 작성하던 도중 흥미를 잃었거나 더 재미난 주제를 찾았거나 컴퓨터가 아닌 다른 것을 시작했거나 단순히 시간이 없었거나 글을 게시할 타이밍을 놓쳐서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한 지도 2년 9개월이 다 되어 간다. 군대 가기 전엔 PDA에 빠져서 카페를 만들었고 아는 누나의 소개로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만들었다. 네이버에도 만들었다. 그땐 일종의 일기장 같은 느낌이었다. 주된 관심사는 카페에서 처리하고 블로그엔 완전히 개인적인 기록만 있었다. 제대 후 처음 티스토리에 가입하게 됐다.

 글을 하나 완성하고 둘 완성하고. 3개월이 지나고 44번째 글을 썼을 때 (순서는 44번째가 아니지만) 지인이 아닌 방문객이 첫 댓글과 엮인 글을 남겨주셨다. 그때 마음속으로 정말 좋아했다. 사실 나랑 친한 사람 중엔 내 블로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흠. 그때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메타블로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 역시 방문객 대다수는 검색 엔진을 통해 찾아오신다. 내 블로그를 먹여 살려주는 네이버 다음 구글 삼총사. 다른 분들 블로그 구경도 가고 댓글도 남기고 해야 하는데.

 그러다 입원을 하고 또 퇴원하고. 그렇게 2년 반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20대 중반이었던 난 이젠 서른에서 거꾸로 세는 것이 가까운 나이가 됐고 휴학생이고 환자고 최종 학력은 고졸. 예전에 미투데이 광고에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갑갑하다!!'

 오랜만에 예전에 남겼던 흔적을 살펴보면서 혼자 웃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돌려 듣기도 하고. 지금도 Al Green이 부른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를 듣는다. 왠지 잠이 오지 않는 밤?

 당분간은 예전 기록의, 기억의 흔적을 되살려보려 한다. 60개가 넘는 글을 다 살릴 순 없겠지만, 그 당시의 나를 하나씩 곱씹어보는 것도 꽤 재미난 작업이 될 것 같다.

 오늘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다녀왔다. 꽃이 꽤 많았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매화.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써 식목일이네.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부탁드렸다. 두 분이니까 부탁도 두 개. 난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다. 아버지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도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가 할머니가 됐다. 정말 금방이다.

 문득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일기를 쓸 땐 [오늘], [그러나], [하지만], [오랜만에], [참 재밌었다] 이런 말은 되도록 쓰지 마세요!'라고 하셨는데. 아직 그 버릇 못 고쳤구나 난. 글을 쓴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이다. 이젠 정말 자야지. Bonne nu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