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없는 만년필, 라미 사파리(LAMY Safari).

2010. 7. 27. 23:45Life/Desire

얼마 전 원데이 쇼핑몰에 라미 사파리 만년필이 나왔다. 라미 사파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미 펠리칸 M250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냥 저렴한 만년필 정도로만 생각했다. 또 가격이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볼펜 하나와 비교했을 땐 상당한 가격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라미 사파리의 정가는 49,000원이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20% 할인된 39,2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그러다 원데이 쇼핑몰에서 거의 반값에 판매하는 것을 보고 충동구매!!

라미 사파리는 여러모로 부담이 없는 만년필이다. 일단 가격도 저렴하지만, 만년필 특유의 딱딱함이 없다. 보통 검정이나 파랑 등 색상이 제한적인 다른 만년필과는 달리 빨강, 노랑, 파랑, 흰색, 검정에 분홍까지 정말 다양한 색으로 출시되어서 여성분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사설은 여기까지 하고 라미 사파리를 살펴보자. 라미 사파리는 검정 포장지에 포장되어 왔는데 포장을 벗기니 마분지 뒷면 같은 회색 종이가 나왔다. 그 종이를 벗기면 진짜 라미 케이스가 나온다. 이 작은 검정 상자가 라미 사파리 케이스다. 펠리칸이나 워터맨은 약간 딱딱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흔히 생각하는 만년필 케이스에 들어 있지만, 라미는 조금 다르다. 저렴한 가격에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 편이 사파리 디자인과 더 잘 어울린다. 훨씬 실용적인 듯. 사실 나 만년필 케이스다!! 하는 케이스는 장식용일 뿐 실제로 쓸 데가 없다. 버리려고 해도 뭔가 분리수거도 애매한 그런 재질. 반면 사파리 케이스는 종이이면서도 꽤나 세심하게 만들었다. 여닫는 방식만 해도 LAMY가 양각된 은색 사각형을 뚜껑에 맞춰서 끼우는 방식이다.

검정 케이스를 열면 이렇게 구성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운데가 만년필 몸체고 위에 있는 녀석이 병 잉크를 넣어서 사용하는 컨버터, 아래에 있는 두 녀석이 카트리지다. 카트리지는 일회용 잉크로 사용이 간단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반면 컨버터는 병 잉크를 사면 잉크를 다 쓸 때까지 계속 사용할 수 있어서 반영구적이다. 컨버터와 카트리지 혼합형이 저가 만년필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요렇게 구성된다. 가운데 청색과 흑색이 일회용 카트리지고 젤 밑에 있는 녀석이 컨버터다.

카트리지나 컨버터는 만년필 본체를 분해한 다음 촉 뒷부분에 홈을 잘 맞춰서 눌러 끼우면 결합 완료! 그림에 보이는 갈색 링은 처음 사파리가 배송될 때 몸통 안에 들어 있는 청색 카트리지가 장착되지 않도록 공간을 띄우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보면 Remove라고 크게 적혀 있다. 카트리지는 장착 후 바로 사용할 수 있고 컨버터는 병 잉크를 주입하면 사용할 수 있다.

라미 사파리의 불편한 점 중 하나는 잉크 주입이다. 펠리칸은 촉을 조금만 담가도 잉크가 들어가지만, 사파리는 촉을 끝까지 담가야 잉크가 들어간다. 아마 피드 부분 모양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사파리는 피드 부분에 홈이 하나밖에 없다. 평소 땐 상관없지만, 잉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땐 주입이 아주 힘들 것 같다. 두 번째 불편한 점은 나사식 뚜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용엔 바로 뽑아서 쓸 수 있는 라미 사파리의 뚜껑이 편하지만, 상의 주머니에 끼워두거나 공책이나 파일에 끼워서 들고 다닐 땐 어느 순간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또 나사식 뚜껑이 잉크가 마르는 것도 잘 막아준다고 한다.

불평은 이쯤하고, 병 잉크를 주입하면 이렇게 컨버터가 가득 찬다. 위 그림의 공간은 잉크 주입 후 얼마간 사용해서 생긴 부분이다.

폰카로 찍은 것을 대강 원색과 비슷하게 보정했다. 이미지 편집 및 보정에 약하다 보니 이 정도가 한계 ㅠㅠ. EF 닙이 대강 이 정도 굵기다. 대조군이 없어서 좀 아쉽지만, 펠리칸 M250 EF 닙보단 조금 굵다. 대략 동글동글 뚜껑의 사쿠라 펜과 같은 두께다. 아직 닙이 제대로 길들지 않았지만, 얇은 두께는 아니다. 작은 글씨 쓰기엔 좀 굵다.

이전에 사용하던 펠리칸은 14K 닙이었는데 사파리는 SS 닙이라 필기감이 나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적당히 사각거리는 느낌으로 물 흐르는 듯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처음 쓸 땐 무게감이 애매했다. 뚜껑을 빼고 쓰면 너무 가볍고 뚜껑을 끼면 뒤로 쏠리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삼일 지나니 적응되었는지 처음처럼 거슬리진 않는다. 가벼워서 빠르게 쓰기에도 좋다. 또 손으로 잡는 부분에 삼각형으로 홈이 있어서 쥐느 느낌이 아주 좋다.

상대적으로 만만한 라미 케이스는 속에 든 회색 물질(?)만 빼면 요렇게 간단한 필통 대용으로도 쓸 수 있다. 단, 종이로 되어서 깔고 앉으면 다 뭉개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품을 구매한 카르페디엠의 소개 그림이다. 폰카로 찍은 내 사진보다 훨씬 선명하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잘 나타나 있다. 독특한 모양의 클립과 삼각형 그립 부분이 특히 매력적이다.

정리하면 라미 사파리는 저렴하고 가볍고 아저씨스럽거나 중년스럽지 않고 케이스를 필통 대용으로 쓸 수도 있고 적당히 사각거리고 EF닙 기준으로 사쿠라 펜 정도의 굵기이다. 또 그립 부위가 삼각형 모양으로 홈이 파져서 잡는 느낌이 아주 좋다. 장시간 사용해도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피드 부분에 구멍이 하나만 있어서 그 부분이 잉크에 잠겨야 주입이 되는 것 같고(난 그렇게 느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 때문에 병에 잉크가 조금 남았을 땐 주입이 힘들 것 같다. 또 뚜껑이 나사식이 아니라서 주머니 등에 꽂아두면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버릴 수 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가격(26,300원에 구매!!) 대비 아주 훌륭한 만년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