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LOT 에르고 그립 - 저렴한 세필용 만년필.

2011. 6. 12. 01:16Life/Desire

얼마 전에 PILOT 에르고 그립이란 만년필을 샀다. 본품이 1만 원도 안 되고 컨버터까지 합쳐도 17천 원 정도인 저렴한 녀석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펠리칸이나 라미 사파리도 EF닙이지만, 서양 기준이라 꽤 굵은 편이다. 대략 뚜껑이 동글동글한 사쿠라 펜 정도? 그래서 세필용 만년필에 도전했다.

에르고 그립은 컨버터가 포함되지 않은 제품이라 컨버터를 따로 구매해야 한다. 호환되는 종류는 두 가지인데, 회전형(?)인 CON-50과 푸쉬형(?)인 CON-20을 사용할 수 있다. 난 CON-50으로 주문. 워낙 저렴한 제품이라 따로 포장 상자가 없고 비닐 포장에 들어 있다. 펜 습자용이라 그런지 학교 그림도 그려져 있고.

은색 닙. 파이롯트 상호와 닙 굵기(EF) 등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촉 끝 부분은 라미 사파리나 펠리칸 제품보다 훨씬 얇고 작다. 굉장한 세필이라고 하니 그래서 그런가 보다 싶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카트리지, 컨버터를 포함한 제품 전체. 이제 결합만 하면 된다.

에르고 그립에 컨버터를 결합했다. 투명색이라 속이 다 보인다.

촉 뒷부분. 세로 홈이 네 개 있다. 잉크 흡수 및 배출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인 듯. 하이그로시(???) 재질인지 뭔지 약간 광택이 있다.

세필인 만큼 흐름이 좋지 않은 잉크를 사용하면 끊기거나 부드럽지 않을 것 같아 파카 큉크와 펠리칸 4001 사이에서 조금 고민했다. 이번엔 펠리칸 4001을 사용했는데 흐름이 아주 좋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새 제품이라 더 그렇겠지만. 지금 넣은 잉크 다 쓰고 약간 익숙해질 즈음 큉크로 바꿔서 사용해봐야겠다. 아무래도 세필이고 뻑뻑한 만큼 잉크에 따른 필기감 차이가 클 것 같다.

에르고 그립은 대략 굵기가 하이텍 씨 0.3밀리와 비슷하다. 독일 제품인 펠리칸, 라미 EF 닙과 비교하면 거의 반 밖에 안되는 느낌이다. 처음 쓸 땐 '만년필이 이렇게 얇아도 되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얇았다. 얇은 만큼 필기감도 나쁘고 처음엔 잉크 끊김도 있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부턴 흐름이 끊기거나 하는 문제는 없어졌다.

한 달도 채 안 된 기간 동안 내가 느낀 에르고 그립의 장단점. 먼저 장점.

  1. 가장 큰 장점은 얇은 두께. 일반 필기, 다이어리나 수첩 등의 작은 곳에 필기할 때 유리하다. 만년필이 0.3밀리 수성펜 두께라면 말 다 했지.
  2. 투명이라 속이 보인다. 깔끔한 느낌이다. 나중에 상처가 많아지면 흉해지겠지만, 아직은 반짝반짝 보기 좋다.
  3. 트위스트 캡이다. 세필이라 잉크가 쉽게 마른다는 점 때문에 트위스트 캡을 사용한 건가? 개인적으로 트위스트 캡을 선호하는 편이라 좋다.
  4. 손 위치를 정확하게 잡아주는 그립 홈이 있다. 라미 사파리를 사용할 때도 아주 편하다고 생각한 부분인데, 에르고 그립의 그립 역시 만족스럽다.
  5. 가격이 저렴하다. 학생이라도 큰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제품이다.

다음은 단점.

  1. 너무 얇은 나머지 필기감이나 흐름이 좋지 않다. 어떤 이는 에르고 그립에 극흑 잉크를 사용한다는데, 그럼 만년필에서 부드러움이 아닌 짜증을 느낄 듯. 일단 첫째도 잉크, 둘째도 잉크. 흐름이 나쁜 잉크는 에르고 그립의 적이다.
  2. 캡이 작고 펜 촉 끝이 뚜껑 내부에 고정되지 않는다.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뚜껑이 있었음에도 촉이 상할까 걱정됐다. 게다가 투명색 뚜껑 전체에 잉크가 튀어서 닦느라 고생했다.
  3. 내부가 투명이라 오래 사용하면 물들 것 같다. 그래도 검정보단 투명색이 나은 듯.
  4. 컨버터 고정 부분이 뻑뻑하다. 라미 사파리는 결합 및 제거가 쉬웠는데, 에르고 그립은 힘을 많이 줘야 컨버터나 카트리지를 제거할 수 있다.
  5. 얇은 반면 잘못 떨어뜨리면 촉이 쉽게 망가질 것 같다.

아직 오래 사용하지 않아 생각나는 건 이 정도 뿐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펠리칸, 라미, 에르고 그립 EF 닙 굵기 비교한 것 스캔해서 올려야겠다. 그래도 만원에 이 정도면 아주 굿! 빨랑 길들일 생각에 요즘 이 녀석만 사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