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의 A/S.

2010. 7. 19. 01:13Life/Chat

 서비스 때문에 가격이 비싸도 대기업 제품을 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사실 난 제품이 고장나서 서비스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6년쯤 전에 삼성 냉장고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 A/S를 받았는데 사소한 문제였지만, 더운 날 - 아마 주말이었던걸로 기억한다 - 먼길 오셔서 출장비도 받지 않고 가셨다. 이럴 때면 '역시 쌤쑹!'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 외에는 핸드폰 정도만 A/S를 받아봐서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A/S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 필립스와 우주엘텍 두 회사 제품이 고장나서 A/S를 받게 되었다. 필립스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네덜란드의 거대 기업이다. PSV 아인트호벤 소유주로도 잘 알려져있다. 전구로 시작해서 지금도 전구쪽은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는데 사실 더 많이 알려진 것은 면도기, 다리미, TV 등 소형 가전이다. 의학 장비를 생산하는 사업부까지 총 3개의 사업부(Consumer, Lighting, HealthCare)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엘텍은 VAV라는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회사다. 수원에 본사가 있는 회사로 전자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EMS 사업부와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환경사업부로 구성된다. 차량용 공기청정기와 작은 평형의 가정용 공기청정기를 주로 생산하는데, e-나노필름필터를 사용해서 미세먼지, 악취, 세균, 박테리아를 제거하고 새집 증후군도 예방한다고 한다.

 A/S를 신청한 제품은 필립스 Sonicare 음파 칫솔(HX6932)와 VAV 알리딘이다. 필립스 소닉케어는 가격이 ㅎㄷㄷ한 음파 칫솔이고 VAV 알라딘은 소형 공기청정기다. 오래전부터 소닉케어를 사용했는데 괜찮아서 잇몸이 좋지 않은 부모님께도 같은 제품을 사드렸다. 그런데 몇달 사용하지 않아서 칫솔과 칫솔모를 연결하는 부위가 부러진것처럼 소음이 심하게 나며 제대로 사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 주변 필립스 서비스 센터에 전화하니 몇 가지 간단한 사항을 물어보고는 택배로 보내거나 센터를 방문하면 바로 A/S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어머니께서 칫솔을 들고 센터를 방문하셨다. 처음에 여직원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구매 영수증이나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안된다고 해서 어머니가 발끈하신 찰나 다른 고참 직원(?)이 달려와서 바로 A/S를 접수하고 며칠 뒤에 찾으러 오라고 날짜를 알려줬다. 그리고 제품을 찾으러 가니 새 제품으로 교환하는데 새 제품을 신청해서 수령하는 절차에 몇 일이 소요되었다며 새 제품으로 바꿔주었다.

 사실 HX6932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칫솔 치고는 상당히 고가이다. 저렴하게 구매해도10만원은 줘야 한다. 뭐 이 가격에 서비스에 관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수리가 아닌 신품 교환이라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서비스 센터에서 직원이랑 실랑이할 필요도 없고.

 VAV 알리딘은 봄에 원데이 쇼핑몰에서 구매한 제품이다. 황사를 대비해서 혜진이와 누나한테 하나씩 사줬다. 아마 당시에 5만원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헤진이가 사용하던 제품이 떨어지면서 팬 연결 전선이 끊어졌다. 팬이 돌지 않는 상태로 방치된 제품을 내가 대신 A/S를 맞겼다. 처음 전자 우편으로 서비스 문의를 하니 거의 바로 답이 왔다. 제품을 보내기 전에 전화를 하고 택배를 보내면 바로 수리해서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히 만족하며 제품을 보냈다.

 사실 이 제품의 A/S는 정말 간단한 작업이다. 납땜 부위를 두 개 제거하고 전선 피복을 벗겨 다시 연결하고 두 군데를 다시 납땜하면 끝이다. 그러나 도구와 내 손의 문제로 A/S를 보내기로 했고 그쪽에서도 흔쾌히 허락해서 꽤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택배를 보낸 다음날 우주엘텍에서 전화가 왔다. 제품 외관의 팬 고정 부위 일부가 살짝 부러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제품을 전체 세트로 보내지 않았느냐,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보낸다, 그러면 우리가 제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판단할 수 없지 않느냐 등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내가 필터는 A/S가 필요 없으니 케이스만 보냈는데 케이스만 봐서는 제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고 게다가 처음 A/S를 신청한 부위 외에 다른 손상이 있는데 이건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밑도 끝도 없이 나에게 묻기 시작한 그 분.

 사실 틀린말만 한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좀 어이가 없다. 먼저 A/S를 보낼 때 필터까지 완제품을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없었는데 왜 그게 문제가 될까? 물론 중소기업 제품이라 대기업처럼 PID를 통한 제품 구매 날짜 등을 관리할 수 없으니 필터를 통해 사용 기간을 판단한다는 생각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걸로 트집을 잡는 것은 먼저 내가 사전에 이야기한 사용 기간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필터는 소모품이라 사용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새걸로 바꿀 수 있는데 그 필터로 사용 기간을 판단하겠다고? 참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둘째로 제품 케이스 일부가 약간 파손된 문제. 사실 이 부분은 A/S를 보내기 전에 알고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제품의 성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전제품을 사용하다가 제품 외관이 약간 상한다고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A/S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일까? 뭐 여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마치 내가 아주 큰 잘못이나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A/S 담당자가 소비자에게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해달란 말이냐?'라고 되물으니 어이가 없다.

 뭐 그런 소릴 듣고 그냥 넘어갈 성격은 아니라 조목조목 따지며 그 분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해 드렸다. 일단 필터는 제품 손상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데 사전에 공지하지도 않고 트집을 잡는건 말이 안된다. 그리고 내가 A/S를 의뢰한 부분은 아주 단순한 수땜 작업인데 성능과 관련도 없는 케이스 파손은 왜 갑자기 이야기하느냐. 그리고 케이스를 A/S 해야 하므로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도 아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사자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으면 난 어쩌란 말이냐. 케이스 A/S는 필요도 없으니 수땜이나 해서 보내 달라.

 제품 A/S 규정이나 규칙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자랑도 아닌데 저 당당한 태도는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리고 1주일이 넘은 지금까지 제품은 오지 않고 있다. 전선 두 개 수땜하는 작업 공장에서 10분이면 끝내고 라면도 끓여먹겠다. ㅡㅡ

 사실 제품을 살 때 A/S는 꽤 중요한 부분이다. 제대로 A/S를 받지 못하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얼마전 병원 친구가 노트북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삼성을 사고 싶은데 어떠냐고 물었다. 난 ASUS와 MSI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고 가성비가 뛰어나서 선택했다. 그러나 병원 생활을 하며 원하는 대로 A/S를 받을 수 없는, 그리고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친구에게 삼성이 아닌 가성비가 뛰어난 다른 회사 제품을 사라고 권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고장이 나면 얼마나 고생하고 번거로울지 알기 때문이다. 얼마전 현지인에게 한국에서 A/S가 형편없다고 소문난 HP가 호주 등 외국에서는 보증기간 내에 칼같이 A/S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삼성이 A/S 하나로 우리나라 컴퓨터 시장을 이만큼 차지한 걸 보면 A/S에 더 신경을 쓸 것 같은데 그분들의 마음은 또 그게 아닌가보다. 퇴원하면 집에 작은 소형 공기청정기를 사려고 삼성의 바이러스 닥터와 에어비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솔직히 에어비타를 사기가 꺼려진다. 왜 사람들이 서비스, 서비스 하는지 알겠다.